이국종 /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장

 

우리는 일본한테 경쟁심 많이 느끼잖아요. 우리는 일본 이기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요,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을 때 일본 전역에 있는 헬기들이 방사능 낙진으로 쑥대밭이 되고 쓰나미가 들이닥치는 중에서도 사고 현장 한가운데로 다 들어갔어요. 닥터헬기들이, 아직 쓰나미 물이 빠지지도 않았는데도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

 

일본의 닥터헬기 지원

 

 

1. 대한민국의 사망원인 1위는 다름 아닌 외상으로 인한 사망입니다.

 

한국의 3대 사망원인.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알고 있고, 또 통계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사망원인 1위는 바로 '암'입니다. 하지만 1/3이 넘는 암투병 환자들이 질병 때문이 아닌 '사고' 즉 '외상'으로 인해 사망합니다.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들은 5년, 길게는 10년 투병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시지만 외상으로 인한 대부분의 환자는 사고 직후 목숨을 잃기 때문에 준비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죠. 심지어 외상사고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경제를 떠받치고, 가정을 부양해야하는 40대 전후가 대부분입니다.

 

외상도 빈부격차가 있다는 이국종 교수.

외상으로 인한 사망은 응급구조 체계만 잘 잡혀 있더라도 막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살 수 있었음에도 체계가 없어 생명의 불이 꺼져갈 수밖에 없었다면 그 억울함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응급의료지원 시스템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2. 한국의 초라한 의료 시스템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을 설명하는 모습

 

사람은 체중의 5%가 혈액으로 이루어져 있고, 체중의 2%에 해당하는 혈액을 체외로 흘리게 되면 사망에 이릅니다. 양으로 따지자면 1.5 리터 정도 되는데 1리터의 우유팩에 들어있는 우유를 땅에 부어버리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생각해보면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촌각을 다투는 외상환자들이 살기 위해선 확고한 시스템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실제로 헬기를 이용한 응급환자 수송은 응급진료를 받는 시간을 앞당겨 주기 때문에 응급환자의 생존율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HEMS ( Helicopter Emergency Medical Service ) 헬리콥터 응급 의료 서비스는 하루 평균 4~5회를 수행하지만 우리나라의 헬기 운용 횟수는 런던의 1/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는 환산해보면 하루에 1~2회 정도 운행을 하는 것인데 헬리콥터의 지원이 중증 외상 환자의 생존율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입니다. 의료계에서는 길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응급 엠뷸런스를 '도로 위의 관'이라고도 한답니다. 육로로 이송하면 응급환자는 생존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말이겠죠.

 

목숨을 건 런던의 응급환자 구조 모습.
런던의 HEMS 수행 회수 (좌) / 우리나라 응급환자 평균 이송시간 (우)

 

 

3. 대한민국에서 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주대학병원으로 접수된 민원 협조문.

 

하루는 닥터헬기가 중 응급구조가 필요한 환자가 발생해서 이동을 하고 있는 중에 등산객이 김밥에 모래먼지가 들어갔다며 민원이 들어온 사례가 있었습니다. 또 주택가에서 응급환자를 구조하기 위해 비행을 했을 때 그 소음으로 인해 주거생활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접수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민원을 볼 때마다 뭔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낙심을 하게 된다는 이국종 교수..

 

미국의 헬기 지원 모습. 주택가 사이를 활공하는 헬기 (좌)

 

주택가 근처에서 구조활동 중인 일본의 닥터헬리.

 

영국의 구조활동 모습. 주택가에 급히 착륙한 응급구조헬기(우)
영국의 헬기 이,착륙장.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거단지.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응급환자 역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중 한 명이죠. 이런 것을 따져보면 응급환자는 응급환자일 뿐 누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소중한 생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늦은 시간, 혹은 중요한 작업 중 응급헬기 소리가 들릴 때는 그 안에서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떠올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주간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위험한 야간 비행.

 

헬기 한기가 뜨기 위해서는 수 많은 인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국종 교수.
좁은 헬기안에서 이루어지는 응급처치.

 

 

4. 그래도 버틸 수 있습니다.

 

병원안의 숙식장소 (좌) / 지친 의료진의 모습 (우)
중증외상센터 응급실 모습. 장소가 없어 간의 배드를 이용한 진료.
2010년도에 일년에 집에 4번밖에 못갔다는 이국종 교수의 동료(좌) / 그의 딸이 보낸 편지 (우)

 

이국종 교수는 일 년에 집에 4번밖에 못 가고 여러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있어도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이국종 교수와 뜻을 함께하려는 정신 나간(?) 동료들 덕분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역경이 있어도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료가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어떤 한 동료는 "교수님, 그냥 사진이나 한 장 남기고 털어버리세요."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이국종 교수가 지쳐 나가떨어져 버릴 것으로 보고요.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의료 활동을 해도 육체적 한계를 초과하는 업무량을 마주하게 되면 무너져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는 그때마다 내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동료들이 있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이 의료 선진국이 되어 응급환자의 생존율을 올리기 위해서,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사명감에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모든 국민들을 동료로 느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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